이민 열풍의 그늘

한국에서 일고 있는 ‘脫 한국’ 바람은 유학이나 취업을 통해 현지에 일단 체류하면서 영주권을 얻으려는 현지이민의 형태로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 외교통상부가 최근 집계한 바에 따르면 캐나다로의 이민조건이 강화되면서 전체이민자의 수는 줄어 들었지만 현지에서 영주권을 얻으려는 현지 이민자들은 늘어나 전체이민자의 1/4 가량을 차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어떤 면에서 보면 어차피 떠나기로 한 이상 미리 생활의 터전을 옮긴 뒤 이민을 추진하겠다는 적극적 사고가 많아지고 있다는 반증인데 밴쿠버에서도 실제 이러한 유형의 교민들이 상당히 많다는 점을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들에게서는 일단 살아보고 결정하는 것이 좋은데다 실패해 돌아가더라도 한번쯤 외국생활을 경험해 보았다는 것 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분위기다.

반면 일부에서는 영주권을 목적으로 장기 체류하려는 이들의 심리를 악용해 허위 문서를 작성하거나 비자발급을 미끼로 임금 지급마저 거부하는 사례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어 충격을 주고 있는데 자격이 되지 않음에도 편법을 이용한 경우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마당이라 피해를 입고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독립이민을 고려했었다는 A씨는 “영어와 현지 취업경력에서 더 좋은 점수를 얻는다면 영주권을 얻기 쉽고 또 생활해 보니 가능하면 여기서 살고 싶었지만 취업비자를 빌미로 터무니없는 저임금 계약과 은밀한 유혹마저 요구해왔기 때문에 희망을 접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편법과 불법행위가 난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실토했다.

이 같은 사례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는 점은 이미 영주권을 취득한 K씨로부터도 확인됐다. 그는 6년여의 세월을 악몽처럼 여겼다. “통상임금수준의 절반에 못 미치는 급여를 받았지만 비자연장을 위해서는 별도리가 없었다”고 한숨을 내쉰다.

또 다른 K씨의 경우는 ‘설마’라는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그는 “일시불로 자신의 돈을 맡긴 뒤 월급형태로 받았기 때문에 3년 이상을 무임금으로 일해 준 것”이라고 말했다. K씨는 “그 동안 들인 비용이나 시간, 마음 졸임 등을 생각하면 차라리 기업이민이나 투자이민을 택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면서 씁쓸해 했다.

외국인 이주자들이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밴쿠버가 선정됐다는 외신은 이민 열풍의 또 다른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이용욱 기자 lee@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