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거주 외국인 100만 명 시대'(2010년 기준 91만8917명, 통계청). 그렇지만 이들에 대한 한국인의 시선은 곱지만은 않다. '제노포비아(외국인 혐오증)'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청소년과 주한 외국인 청소년이 체감하는 '다문화 수용도'는 어느 정도일까. 지난 1일 맛있는공부 편집실에 네 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다문화 가정 자녀' 바트바타르 어트겅자야(서울 재한몽골학교 9년)양과 서울 강북구다문화가족지원센터(이하 '센터')에서 봉사 중인 정세화(서울 영훈국제중 2년)양, 천빙밍(베트남·한국외국어대 중국어과 2년)·다쿠라 히테타케(일본·고려대 경영학과 3년)씨가 그 주인공. 천씨와 다쿠라씨는 지난달 송암문화재단에서 '제2회 송암 다문화 장학금'을 받았다.

 

◇외국인 차별 여전하지만 조금씩 나아지는 추세

.par:after{display:block; clear:both; content:"";}

“센베노(안녕하세요)!” 천빙밍씨, 정세화·바트바타르 어트겅자야양, 다쿠라 히테타케씨(왼쪽부터)가 바트바타르양의 모국어인 몽골어로 인사하고 있다. /유창우 기자 canyou@chosun.com

 

“이웃 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들과 시비 붙는 게 일상이에요. 걔들은 저희랑 마주칠 때마다 ‘너희 나라로 가버려!’라며 악담을 퍼붓거든요.”(바트바타르 어트겅자야)

“고 1 때였나, 이전까지 잘 지내던 친구들이 갑자기 노골적으로 절 모른 체하는 거예요. ‘혹시나’ 했는데 역시 제 국적이 문제였어요. (한국 땅) 독도를 넘보고 한국을 식민 지배하며 해코지한 일본인 핏줄을 타고났다는 거죠. 웃어넘기면서도 마음이 영 씁쓸했어요.”(다쿠라 히테타케)

섭섭함도 많았지만 이들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천빙밍씨는 그 예로 자신의 고교 시절 경험담을 들려줬다. “제가 한국으로 전학 왔던 지난 2008년, 인천 국제고를 통틀어 외국인이라곤 저 하나뿐이었어요. 몇몇 선생님은 제가 진도를 따라잡지 못할까 봐 제 ‘전용 강좌’를 만들어주셨어요. 평가 때도 제가 지닌 언어 장벽을 감안해 점수를 매기셨고요. 최근엔 외국인 지원 단체도 하나 둘 생겨나는 추세예요. 요즘 제가 봉사 중인 인천외국인력지원센터·인천국제교류센터 같은 곳들이죠. 외국인에 대한 배려가 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일종의 ‘청신호’ 아닐까요?”

◇친구 사귀기, 움츠러들지 말고 ‘정면 돌파’하길

바트바타르양은 멘토를 자청한 천빙밍, 다쿠라씨에게 ‘한국 친구 사귀는 법’부터 질문했다. 그가 재학 중인 재한몽골학교는 국내에 거주하는 몽골인 학생이 몽골 학제에 따라 공부할 수 있도록 민간단체(나섬공동체)가 마련한 공간이다. 바트바타르양은 2년 전 한국에 온 이후 줄곧 이곳에서 공부해 한국 학교 경험이 전무한 상태다.

천씨는 “움츠러들지 말고 ‘정면 돌파’하라”고 조언했다. “제 경우 ‘1대1로 식사하기’ 전략을 자주 사용했어요. (모국인) 베트남 음식을 함께 즐기며 한국과 베트남 간 문화 차이를 주제로 대화 나누다 보니 쉽게 친해지더라고요. 예를 들어 베트남 현지에서 먹는 쌀국수는 한국에서 파는 베트남 쌀국수와 맛이 달라요. 고수·짜오 등 향신료로 쓰이는 채소 때문이죠. 그런 얘길 들려주면 대부분 무척 신기해해요. 물론 한국 친구들과 얘길 주고받으려면 한국어 공부는 필수죠.”

정세화양은 지난달부터 센터 내 다문화 가정 유치부 어린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아이들을 편하게 대하려 하다가도 행여 무의식적 행동으로 상처를 주면 어쩌나 걱정돼요. 예를 들어 호주에선 여자친구끼리 팔짱을 끼면 이상하게 여긴대요. 연인으로 오해한다는 거죠. 그런 얘길 듣고 나니 아이들에게 마냥 살갑게 굴지도 못하겠고…. 저도 모르게 행동이 경직되는 것 같아요.”

정양의 고민을 들은 다쿠라씨는 “때론 지나치게 조심스러운 행동이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설사 스킨십 문화가 익숙지 않은 나라에서 온 친구라도 한국인이 내미는 손길을 거부하진 않을 거예요. ‘예의 없다’고 생각하는 대신 ‘한국에선 동성 친구와도 팔짱 끼고 다니는구나’ 하고 받아들이겠죠.”

◇최선의 해법… ‘동반자’ 인식하고 타협점 찾아라

이들 넷 역시 상대 국가(의 문화)에 어느 정도의 편견을 갖고 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항상 전통 의상에 큰 모자 차림인가요?”(정세화) “아뇨. 한국 사람들도 만날 한복 입고 다니지 않잖아요.(웃음) 물론 어르신 중엔 전통 복장을 즐겨 입는 분이 종종 계시죠.”(천빙밍) “한국인과 어느 정도 친해지면 꼭 받는 질문이 있어요. ‘독도가 어느 나라 영토냐’ 하는 거죠. 10년 이상 한국에 살았으니 당연히 한국 땅이라고 생각해 ‘우리나라’라고 답하면 상대방은 꼭 되물어요. ‘너희 나라가 어딘데?’ 그럴 때마다 참 난처해요.”(다쿠라 히테타케)

천씨는 “한국이 진정한 다문화 사회로 가려면 ‘타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희 집은 어머니가 베트남인, 아버지가 한국인이에요. 어머니는 싱거운 음식을, 아버지는 짠 음식을 좋아하시죠. 한동안 티격태격하시더니 요즘은 잠잠하세요. 어머니가 ‘아버지용 음식’을 따로 만드시거든요. 어쨌든 함께 살아야 하는 부부니까 일정 범위 내에서 서로를 존중하기로 하신 거죠. 한국인과 주한 외국인도 저희 부모님처럼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서로가 서로에게 동반자적 존재란 사실을 인정하면 마음의 문도 조금씩 열리지 않을까요?”

다쿠라씨는 바트바타르양에게 ‘사소한 일에 상처받지 않는 강심장’을 키우라고 주문했다. “사실 전 ‘일본어 못하는 일본인’이에요. 워낙 한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밝히지 않으면 제게 일본인의 피가 흐른다는 걸 잘 모르는 사람도 많죠. 그래도 부정적 시선은 늘 절 따라다녀요. ‘일본인 아빠를 뒀다’는 이유만으로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죠. 전 바트바타르양을 포함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 친구들이 그런 문제 때문에 자신이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았으면 해요. 제 국적을 끔찍이 싫어했던 한 친구도 몇 년 후 절 찾아와 사과하더라고요. 터무니없는 멸시는 과감히 무시해버리세요. 가끔은 그런 담대함도 필요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