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 영화제 주최측이 한국 감독들의 '탈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원인은 부산영화제에 있다. 10월 6일 개막한 부산영화제가 아시아 시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행사 일정이 겹치는 밴쿠버 영화제는 상대적으로 소외당하고 있다. 이미 작품 선작 과정에서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씨가 부산 영화제로 인해 못 가져온 작품이 있다고 고백했듯이 그 여파가 최소한 한국 영화 부문에서는 만만치 않다.
한국에서 온 두 명의 L감독은 밴쿠버에 온지 3일 만에 바람처럼 사라졌다. 또 다른 K감독은 영화제목처럼 인터뷰 약속 시간에 '실종'돼 주최측이 찾으러 다니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밴쿠버에 잠깐 나타났다 부산으로 사라지는 감독, 온다더니 안 오는 감독들로 인해 밴쿠버 영화제 주최측 직원들도 언론사와의 인터뷰 약속을 번복하거나 취소하면서 미안한 표정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오가는 사람을 축제를 치르는 마당에 억지로 붙잡을 수도 없는 일. "대책은 없다"며 아시아영화담당 앤드류 푼씨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늦은 방문이나 10분전 인터뷰 취소통보에 대해 야속한 느낌을 기자와 함께 나눴다.
영화제의 백미라면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출연진이나 감독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인데 대부분의 한국 영화들은 올해 그런 재미를 누리기는 어려울 것 같아 아쉽다. 한편 올해 10주년 된 부산영화제가 24주년된 밴쿠버 영화제를 흔들어 놓는 것을 보면 한국 영화계가 가진 문화적인 힘이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권민수 기자 ms@va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