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겔은 인간의 진보를 더 많은 사람들이 권력을 나누어 가지게 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인류의 역사는 서로에게서 서로가 권력을 탈취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전근대의 전쟁들이 권력을 승자에게 가져다 주는 과정이었다고 하면, 근대에 와서는 신분의 폐지와 인권신장이 개개인에게 권력을 주었다고 할 것이다. 과거의 권력이 물질적인 것을 지칭하는 단어였다고 하면 근대의 권력은 정보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다. 누가 얼마나 정확한 정보를 빠른 시일 내에 습득하여 이용하느냐가 관건인 것이다.
정보는 형태가 없는 만큼 변형되기가 쉽다. 특히 말에서 말로 전해지는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가장 쉽게 정보를 습득할 수 있는 방법이겠으나 신뢰도는 떨어진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만큼 가치는 떨어지는 셈이다. 물론 모든 구전 정보의 신뢰가 떨어진다고 단언할 수는 없겠으나 일단 개인의 의견이나 취향이 반영되기 시작하면 직접 사건을 겪은 사람이 말해주는 것이라 하여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다. 똑같은 수업을 들어도 성적이 좋은 학생은 수업이 좋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성적이 나쁜 학생들은 반대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구전 정보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경험에서 우러난 조언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조언은 어디까지나 개인이 결정을 내리는 것에 참고가 될 뿐이지 절대적인 지표가 될 수는 없다. 개인의 미래를 결정지을지도 모르는 정보는 객관성이 있어야 한다.
지난 회에서도 언급했듯이(3월 13일자 ‘점수 잘 주는 학교는 따로 있다?’기사 참조) 대입 기준 성적은 대학에서 정한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해당 대학에 찾아가 보는 것이 정석이다. 세컨더리 학생들의 경우 학교에 카운슬러들이 있기 때문에 카운슬러들에게 많이 의지를 하지만 세컨더리의 카운슬러들은 세컨더리 사정에만 능통할 뿐인 경우가 많다. 필자의 주위에도 세컨더리 카운슬러가 대입에 관한 잘못된 정보를 주는 바람에 조건과 맞지 않는 준비를 한 학생이 있었다. 그릇된 정보를 준 카운슬러는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사실 수시로 바뀌는 대학 정보를 그들이 세세하게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컨더리 카운슬러들의 가장 큰 일은 세컨더리 학생들의 졸업까지 상담을 해 주는 것이므로 그 이후의 일은 학생들이 스스로 찾아나가야 한다.
대학의 카운슬링 서비스는 재학중인 학생들만을 위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직접 찾아가 보면 대학 지원자들을 위한 상담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 예약을 할 필요도 없고, 찾아가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굳이 학교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대부분은 전화로도 상담이 가능하다.
대입에 관한 질문은 필자도 굉장히 많이 받는 편이지만, 역시 대학에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라는 답 이상은 내놓을 수가 없어서 안타깝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답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부담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어떻게 자신의 진로를 개척하고 대학에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 것인가?
손연주 학생기자 (경제학과 3년) ysa15@sfu.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