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ICI(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최정화 이사장은 세계와 문화로 대화하는 소통 전문가다. 그녀는 지금이 문화 한류 인재 육성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한다. 본지가 마련한 우리 사회 각계 전문가, 오피니언 리더들이 들려주는 지상(紙上) 강좌, 이번에는 글로벌 문화 인재 교육법이다.


최정화 이사장은…

국내 최초의 동시통역사이자 한국 이미지 알리기 전문가. 1980년대에 인식조차 미비했던 동시통역에 도전, 세계에서 가장 어렵기로 ‘악명’ 높은 파리 통역대학원에서 동양인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적인 국제회의에서 통역한 횟수만 무려 2천여 회, 방문한 나라만도 68개국에 이른다. 아시아유럽정상회의 자문위원, 월드컵 조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한국의 문화적 위상을 높이고자 활발히 활동한 이유다. 그에 대한 공로를 각국에서 인정받아 2003년 한국 여성 최초로 프랑스 정부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수훈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교수 겸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이사장.


 

“통(通)해야 문화입니다.”

반기문 UN 사무총장님과의 일화 하나 알려드릴게요. 2007년 반기문 사무총장께서 제가 있는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에서 주최하는 ‘한국 알리기 디딤돌상’을 수상하셨을 때였습니다. 수상 기념 파티에서 반 총장을 남편과 함께 만나게 되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 남편은 프랑스인입니다.) 총장께서 남편에게 건넨 첫 마디가 불어로 “한국말 하느냐?”였어요. 그때 저는 깜짝 놀랐어요. 배운 지 몇 달 되지 않았음에도 너무나 유창한 불어 실력에도 놀랐지만, 반 총장의 말씀이 더욱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에 오래 살았는데 한국말을 잘하느냐?”라고 당당히 묻는 기개라고나 할까요?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 사람이 한국말을 잘했으면 좋겠다는 UN 총장의 당부가 남편의 늦깍이 학구열을 불태우게 한 계기가 되었답니다. 그날 이후 남편은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문화라는 건, 결코 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아닌 듯합니다. 서로 통해야 제대로 작동하는가 봅니다. 생소하지만 서로 다른 언어를 배우고 대화하는 것처럼 말이지요.

 
▲ 역대 ‘한국 이미지 디딤돌’ 수상자들. (사진 왼쪽부터) 가수 겸 배우 비, 마에스트로 정명훈, 반기문 UN 사무총장.

 

문화가 있는 곳에는 사람들이 모입니다. 재미있고 궁금하고 때로 감동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그게 문화 현상이 되더랍니다. 문화로 소통하는 비법이 뭐냐는 질문, 많이 듣습니다. 결론부터 말해, 경청이 제일 중요한 소통의 노하우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통’ 하면 무엇을 떠올릴까요? 말을 청산유수같이 잘하는 것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소통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듣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잘 들어주는 사람 앞에서는 비밀이고 뭐고 다 나오는 법입니다. 최고의 정보들이 저절로 수집되는 지름길입니다. 한승수 전 총리가 정말 훌륭한 ‘리스너’입니다. 오늘도 낮에 한 30분 정도 뵙고 왔는데, 뵐 때마다 항상 경청하세요. 제 말이 뭐 그리 흥미진진하겠어요? 하지만 항상 메모하고 다음에 얼굴 보면 제가 했던 말에 대해 화답해 주실 때마다 감동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나라를 알리는 소통 방식이 한 단계 성숙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만 자꾸 보여주려는 데에 집중했었던 것 같아요. 2011년은 일방통행식이 아닌 세계와 공감할 수 있는 소통법이 이루어진 해라고 봅니다. 그 결과, 한류가 얼마나 뜨거웠습니까? 프랑스 파리와 미국 뉴욕, 호주 시드니를 들썩이게 했던 K-팝과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대단했지요. 그동안 동계올림픽은 아시아에서 단 2회만 개최됐습니다. 그것도 일본에서만요. 그런 의미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회장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저희 기관에서 주최하는 ‘한국 이미지 알리기 CICI Korea 2012’의 디딤돌상을 수여하게 되었습니다. 디딤돌을 밟고 세계를 향해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데 대한 노고를 치하하는 의미에서였습니다.

해외에서 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한국 문화에 대한 활동이 활발했지요. 저희 기관에서 지난 9월에 주최했던 ‘문화소통포럼 2011’에는 해외의 유명 문화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습니다. 연이어 인도까지 가서 한식과 태권도를 소개했어요. 현지 반응, 열화와 같았습니다. 분야별로 고른 주목을 받았고 도약의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전 세계적인 경제 침체 상황 속에서도 한국 문화를 알리는 측면에서는 즐거운 일이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문화 한류 시대에 걸맞은 외국어 교육이 필요합니다.”

왜 한국 알리기를 시작했느냐고 많이들 물어옵니다. 계기는 자연스럽게 찾아왔습니다. 1980년대 초에 프랑스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보니, 내 나라에 대한 사랑이 특별해지던 때가 조금 일찍 찾아왔을 뿐이지요. 그런 의미에서도 어릴 때부터 외국인을 만나고 외국 문화를 접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다양한 문화에 대한 교육, 그것을 위한 수단으로서 외국어 교육이 중요합니다.

▲ 주한 외국인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 한국 알리기 프로그램도 큰 몫을 하고 있다. 이른바 한국문화지수를 의미하는 CQ 프로그램이 그것. 주한 외교사절과 문화경제 인사들을 대상으로 한옥, 한복, 한식, 풍수지리 등을 알려준다. 판문점을 비롯해 중요민속자료 제196호인 윤보선 대통령 생가, 안동 하회마을, 해인사, 설악산, 삼성 안내견 학교 등 전통에서부터 현대를 아우르는 문화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호평을 받고 있다.

 

더욱이 요즘 우리 주부들은 자녀들의 외국어 교육에 얼마나 관심이 많습니까? 궁극적인 외국어 교육의 목적을 설정하세요. 우리 아이가 외국어를 잘해서 커뮤니케이션 소통 분야에서 활동할 것인가? 아니면 외국어를 깊이 있고 정확하게 파고들어 국제 분야에서 활동할 것인가? 전자는 국제 외교나 비즈니스 분야에서 중요한 자질입니다. 국제무대에서 여러 언어를 두루 하면 더욱 좋지요. 후자는 통번역사로서 매우 중요한 스킬입니다. “통번역사가 되기 위해선 영어도 하고, 불어도 해야 될 것 같고 서반어도 필요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제 답은 이렇습니다. “그중에 하나만 빨리 고르세요.” 외국어 하나라도 깊이 제대로 알아야 소통 전문가로서 역량을 키울 수 있습니다. 외국어 교육의 목적이 뭐냐에 따라 깊이가 정해집니다.

자녀들의 자질 판단도 중요합니다. 아이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고 호기심을 갖고 있다면 다양한 언어를 접하는 게 좋겠지요? 하지만 하나를 알더라도 깊이 정확하게 짚는 데 소질이 있다면 좋은 통번역사의 자질이 충분합니다. 통번역은 한 언어에 대한 듣기, 읽기, 말하기, 쓰기의 정확도가 중요한 학문 분야입니다. 글로벌 시대라고 무작정 복수의 외국어 학습만을 강조하는 건 현명한 가이드 라인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외국어 교육의 노하우가 있을까요? 있습니다. 저는 ‘외국어 오감 교육법’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첫째, 머리에 세계의 많은 정보를 담을 것. 둘째, 눈으로는 많은 것을 볼 것. 셋째, 하이테크 물건을 손으로 자주 만질 것. 넷째, 많은 것을 귀 기울여 들을 것. 다섯째, 입으로 외국어를 소리내 말할 것. 오감으로 깨친 공부는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법이니까요.

 
▲ 한국 알리기 행사는 국·내외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난 2007년 프랑스 파리에서 행사를 개최한 데 이어 미국 워싱턴 D.C.와 프랑스 파리에서, 2011년 인도에서 한식 체험 행사를 주관했다. 지난 9월에는 각국 문화계 인사들이 참여한 문화소통포럼을 서울에서 성황리에 개최했다. / ©CICI, 조선일보 DB

“호기심 많은 주부들이 세상을 변화시킵니다.”

여고시절, 저는 마냥 수줍어하고 쭈뼛쭈뼛거리기 여왕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세계 최정상의 입을 대변하고 있다는 게 때로 신기합니다. 저는 노력에 의해서 성격도 많이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학교 때 얼떨결에 학생회장 후보로 뽑힌 적이 있어요. 전교생 앞에서 뭔가 얘기를 해야 한다는 게 어찌나 부끄럽고 까마득하던지…. 링컨의 유명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라는 구절을 벤치마킹해서 한 문장 읊고 연석에서 내려왔어요. 딱 한 문장 말하고요. 그런데 학생회 부회장에 선출됐어요. 나중에 들으니 연설이 가장 짧아서 좋았다네요. 그때부터 소심한 성격을 바꿔보려는 담금질이 시작되었어요.

 

통역이라는 게 세계 각국 정상들 앞에서 덜덜 떨면 안 되잖아요? 언어라는 도구를 갈고 닦아 중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의미를 전달하는 것인데! 게다가 통역으로 만난 사람들이 대부분 저보다 훨씬 잘난 사람들이란 거죠. 담력이 굉장히 세졌어요. 제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 언뜻 2가지가 떠오르네요.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스트레스가 쌓일 틈이 없어요.

 

대부분 스트레스란 해야 할 일을 안 하거나 못 하거나 할 때 오기 마련입니다. 되든 안 되는 저는 일단 해치우고 봐요. 그리고 저는 항상 궁금해해요. 사람들이 하도 ‘트위터, 트위터’하는데 어떻게 궁금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해봤죠. 시작해 보니 벌써 팔로워가 3,900명이나 됩니다. 얼마 전까지 페이스북은 안 했어요. 그런데 자주 듣다보니 또 궁금한 거예요. 해봤죠. 트위터보다 길게 글을 쓸 수 있는 게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카톡(카카오톡)도 얼마나 편해요. 돈도 안 들고 실시간으로 국내외 어디서든 메시지를 전송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지천명(50세)의 삶에서 뭔가에 끊임없이 궁금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전 호기심이 정신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비결이라고 믿습니다. 분명 대한민국의 많은 주부들이 저와 같은 젊음을, 즐거움을, 미래에 대한 가능성을 공감하리라 생각합니다.


CICI(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 Corea Image Communication Institute)란?

2003년 6월 3일 외교통상부의 인가를 받아 설립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공익재단. ‘전통과 첨단이 공존’하는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은 국내외 오피니언 리더들과 함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과학, 정보통신 제반 분야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제대로 알리고 이를 발전시켜나가는 데 주력함으로써 궁극적으로 한국의 참모습을 알리고 잠재력에 걸맞은 자리매김에 일조하고 있다. 이 일환으로 2005년부터 매년 초 한국 알리기 ‘CICI Korea’ 행사를 열고 있다.

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한국 이미지 디딤돌’ 시상식으로 한국의 이미지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한 인물과 사물에 상을 주는 것. 마에스트로 정명훈과 반기문 UN 사무총장, 가수 겸 배우 비 등이 역대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올 2012년 ‘한국 이미지 디딤돌상’에는 평창동계올림픽 유치위원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선정되었다. 한국 알리기 행사는 매년 수상자들이 짧은 강연을 하거나 공연을 해 국내외 참석자들에게 한국의 이미지를 다시 한 번 각인시키는 장으로 자리 잡았다.

한편 20세 미만 청소년에게 ‘한국 이미지 새싹상’을 수여해 문화 선진국으로 대한민국의 미래 주역을 발굴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박태환, 김연아, 17세의 나이에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의 꽃’으로 불리는 피아노 부문에서 3위에 올라 전 세계인을 깜짝 놀라게 한 피아니스트 조성진 등이다. 올 ‘한국 이미지 새싹상’에는 뽀로로가 선정돼 화제를 불러모았다.


/ 여성조선 (http://woman.chosun.com/)
취재 김정원 기자 | 사진 강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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