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은 간혹 ‘잊힌 전쟁(Forgotten War)’으로 불린다.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 사이에 일어나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진(receive relatively little attention) 탓이다.

하지만 20세기 가장 중대한 전쟁 중 하나였다. 아시아의 지정학적 형세를 영구적으로 변화시켰고(permanently alter the geopolitical landscape), 수십 년간 지속된 미국과 소련의 고조된 긴장과 냉전(heightened tensions and Cold War)의 결정적 분수령(decisive watershed)이 됐다.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과 소련은 한반도를 이등분하기로 합의했고(agree to divide the Korean Peninsula in half), 그 분단선(dividing line)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지도 위에서 결정됐다. 경계선 획정 임무를 부여받은(be tasked with demarcating the border) 젊은 미군 장교 두 명이 시간에 쫓겨(be pressed for time) 벽걸이 지도를 보며(look at a wall map) 약 30분 만에 중간 분계선(median demarcation line)으로 결정한 것이 38선(38th parallel)이었다. 실제 지리(real-life geography)를 고려하지 않고 되는 대로 그어진(be drawn haphazardly) 선이어서 도로·철도뿐 아니라 한마을도 두 동강 내는 결과를 초래했다.

트루먼 당시 미국 대통령은 선전포고를 하려면 의회 승인을 얻어야(obtain approval from Congress to declare war) 한다는 헌법 조항을 위배했다(violate the constitutional provision). 공산주의에 미온적이라는(be lukewarm toward communism) 국내 비판을 불식하려고(dispel domestic criticism) 미군을 파병하면서(dispatch U.S. troops) 평화 유지를 위한 ‘치안 활동’(‘police action’ to keep the peace)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해 그 장애를 비켜 갔다(circumvent the obstacle).

미국 역사의 두 우상이 예상 밖의 ‘협업’(unlikely ‘collaboration’)을 한 전쟁이기도 했다. 메이저리그에서 타율 0.406을 기록해 20세기 최후의 4할 타자로 불리던 테드 윌리엄스와 미국 최초의 지구 궤도 비행 우주인(first American astronaut to orbit the Earth) 존 글렌이 전투기 조종사로 같은 편대에 소속돼 총 39차례 함께 출격했다. 윌리엄스가 글렌을 호위 비행하는 ‘wingman’ 역할을 맡았고(take on the role), 글렌은 적기 3대, 윌리엄스는 2대를 격추시켰다(shoot down). 훗날 글렌은 연방 상원 의원이 됐고, 윌리엄스는 메이저리그 복귀 후 통산 타율(career batting average) 0.344, 출루율(on-base percentage) 0.482 대기록으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같은 겨레끼리 싸우고 죽인 6·25 전쟁은 제트 추진 전투기(jet-propelled fighter)들이 사상 최초로 공중전을 벌인 전쟁이기도 하다. 동족상잔은 fratricidal war,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상황은 dog-eat-dog, 공중전은 dogfight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