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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엽지추(一葉知秋)
미국의 경제 학자 조셉 A. 슘페터는 투기가 발생하는 때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이 개발되고, 그에 따른 장래 수익에 대한 낙관적인 기대가 만연하게 되면, 그곳으로 자본이 몰려들때 투기가 발생한다고 정의 했다. 새로운 기술이 가져올 이익을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획기적인 기술이 개발됬다면 자본은 어느새 곁에 와있는 경우가 많다. 부동산 시장으로 시야를 좁혀보면 부동산에 있어서 투기는 슘페터의 정의로 포괄할수 없는 요인이 더 많다. 부동산 시장의 투기의 동인은 “새로운 산업이나 기술”에 따른 투기가 아니다. 보다 실리적인 기대에 기초한다고 할수 있다. 지난 수년간 겪어온 시장의 불황은 팽창된 세계경제규모에 따라 갈곳 없던 잉여자본이 대규모로 몰려든 것도 중요한 원인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본의 유수지(遊水池)로서의 역활의 비중이 적지 않았다. 유수지는 건기에는 비어있다가 갑작스러운 폭우가 내리면 하천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물을 잠시 머물게 하는 역활을 한다. 부동산 시장으로 유입된 자본 중에는금융시장에서 폭증한 잉여 자본이 많았었는데, 부동산 투자자들은 유입되는그 잉여자본에 대해서 부동산 시장이 저수지 역활을 할것으로 착각했던 부분이 많다.일엽지추(一葉知秋) 란 말이 있다. "山僧不解數甲子 一葉落知天下秋" 산의 중은 여러 갑자년을 풀지 못하나, 나뭇잎 하나가 지는 것으로 가을이 돌아왔음을 알 수 있다"라는 시에서 온말인데, 속세와 등지고 깊은 산중에 있어도 낙엽 한잎으로 세월이 가고 다시금 가을이 왔음을 알게된다. 어떤 일은 많은 정보가 없어도 간단한 변화로 되어질 큰일을 알게 된다. 밴쿠버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수년동안 침체기를 거쳐오고 있는데, 지금 쯤이면 부동산 시장이 어떻게 되어 질지 알아 차릴만한 일엽이 없을까? 미국이 양적 완화를 좀더 지속한다고 하는 걸보면 아직은 경기회복의 자신감이 없는 듯하지만 오히려 회복의 탄성을 더 높이려고 의도적으로 그러는 것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10여년동안 눈에 가시처럼 뒤따라 오면서 “대들던” 나라를 이번 기회에 흔들어 놀 속셈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 캐나다로서는 미국 금융정책 하는 사람들의 속내에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세계 경기를 해석해야 하니 자신감이 떨어진다. 년중 거래량이 줄어 드는 시기가 다가오는데 올해는 예년과 좀 다른 양상을 띌것으로 보인다. 모기지 이자에 대해서 우려하는 구매 대기자들의 움직임이 그런 것이다. 비교적 저가의 매물들이지만 거래량으로는 년말까지 까지 지속적으로 유지 될것로 예상된다. 대형매물들에 대해서는 특별한 동기가 아직은 없어 보인다.
권오찬 부동산 중개사
2013-09-27 09:5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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玉石混淆 (옥석혼효)
시대와 나라에 따라 소위 잘나가는 학과가 달라 진다. BC주에서 가장 가치있는 학위 랭킹은 어떨까? 2011년도 가계조사결과에 따라 발표된 랭킹을 보면 치과, 약학과 수의학 출신의 급여수준이 가장 높고, 해양과 수학, 컴퓨터 공학 뒤따르고, 안전과 자연자원 관련 학위가 높이 랭크되어 있다. 엔지니어링과 기계관련 학과는 예상과 달리 아주 높이 랭크되지 않았다. 순위를 매기니 머리가 있고 꼬리가 있기 마련이다. 가장 선호되는 학과출신의 수입과 마지막 순서의 수입은 비교할수 없이 큰차이가 있다. BC주의 오랜 트랜드는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시간이 가면서 인기학과가 변해온 것을 다들 잘알고 있다. 한국을 예로 보면 “늘 괞찬은” 학과도 없지 않다. 자기들 끼리 엎치락 뒤치락 하지만 선두 그룹에서 크게 떨어지지 않는 학과들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부침이 있었던 학과들이 더 많다. 개발이 한창일때 광산학이 인기를 끌었고 원자력, 화공 등이 인기를 끌다가 전자가 뜨는 학과였다. 이건 한 예에 불과하다. 새로 분파되는 학과에서 소멸되는 학과들도 있다. 시간이 흘러 사회에서 중견 그룹에 들무렵 비중이 다른 산업으로 옮겨가서 “별볼일” 없이 된 예도 있다. 그래서 부모들의 경험에서 몸소 겪어 얻은 혜안이 2,30년후에도 반드시 맞을 거라는 보장을 할수 없다. 더구나 이렇게 빨리 변하는 시대에야. 공부는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것이지만, 먹고 사는 문제에 대입하면 그것에도 옥석이 있는 것이다. 옥석이 뒤섞여 있는 가운데 골라야 하고 재능이 뒷받침에 되야 하니 고르기기 어려운 것이다. 대학 학위에서 부터 삶의 질이 갈라진다하니 옥석혼요라 할만하다. 더구나 시간이 흐려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니, 평생 줄곧 옥으로 남을 건지도 가늠해야 한다. 주거용 부동산도 그렇지만, 상업용 부동산을 고르는데는 옥석혼요의 땅에서 천착(穿鑿)을 해도 부족하지 않다고 할수 있다. 분석에 쓰이는 변수들이 수없이 많고 또 그 변수들이 어떤 이유에 의해서 급변할수도 있다. 그런 위험요인을 피하려면 수익율을 낯추어야 하니 투자 목적이 이뤄지지 않는다. 변수가 훨씬 적은 다운타운 중심가에서 원하는 수익율을 기대 할수 없는 것처럼 위험 요인을 덜 감수하려면 그만한 포기를 해야 하니 투자희망 지역이 왔다 갔다하게 된다. 팽창기 때에 외곽지역에 선두 진출한 투자자중에는 초대형 몰과 도시개발에 의한 인구 이동 경로 변경에 따라 곤란을 겪은 예도 있다. 고수익 고위험의 예가 된다. 2005년경 낮은 수익율을 감수하고 중심가에 진출한 사람 중에는 예상했던 대로 임대료가 상승하여 예상밖의 결과를 얻은 사람도 있다. 두가지 예를 겉으로 보면 그 원인과 결과를 누구나 알만하다. 아주 상식적으로 볼때는 그렇다. 그런데 두 가지 투자 예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 사람은 현가(現價)에 대해서 더 높은 비중을, 다른 한사람은 가능성은 좀 낮지만 개인적인 확신 속에 미래가(未來價)를 더 비중을 둔 투자를 했던 것이다. 투자는 옥석혼요에서 고르는 것뿐아니라 미래를 그릴줄 아는 능력이 더 필요하다.
권오찬 부동산 중개사
2013-09-19 09:5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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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부머세대
베이비 부머세대가 은퇴를 하는 때를 기점으로 해서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 것중에 개인주택에 사는 부머세대들이 집을 팔고 작은 규모의 주택, 즉 콘도나 아파트 등 으로 옮겨 간다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콘도 같은 공동주택 들의 수요가 급격히 늘어날것으로 예상됬다. 그러나 그런 예측이 조금은 빗나가고 있다. 부머세대들이 살아온 시대는 상대적으로 쾌적하고 여유로운 시대였고 보다 덜 경쟁적인 시대였다. 정원을 꾸미고 가꾸는 것에서 부터 집을 중심으로 해서 여유로운 가족 모임에 익숙해 있고 정서적으로 하우스에 친숙해 져왔다. 다운사이징을 보통은 집을 팔고 콘도로 이사를 간다거나 작은 타운 홈으로 이사를 가는 것을 의미하는데 부머세대는 다운 사이징을 큰집을 팔고 보다 작은 집으로 옮기는 것을 포함해서 생각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작은 집이 그리 흔한게 아니다. 근래에는 관련법규가 허용하는 최대한의 건축면적으로 신축되는 주택들이 태반이다. 주거만을 위한 것을 생각할수 없고 최대한 부동산 가치를 극대화하기 위해서 신축을 하다보니 부동산 가격은 “다운사이징용” 저가의 주택가격대를 이미 훨씬 넘어서 버린다. 금전적인 이유만으로 다운 사이징을 생각하는 부머세대들이 아니기 때문에 지역을 옮겨서 보다 싼 지역으로 옮길만한 이유는 더구나 없다. 그러다 보니 필요하면 역모기지를 통해서 끝까지 살던 집에 살면서 노후를 마치겠다고 까지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부머세대들은 보다 왕성한 성장기에 경제활동을 했던 세대들이므로 상대적으로 주택에 대한 모기지가 적거나 많은 사람들이 이미 모기지에서 벗어난 상태가 됬다. 굳이 돈을 위해서 지역을 옮긴다거나 형태를 바꿔 정서적을 안정된 기존의 주택에서 벗어날 이유가 없어진것이다. 더구나 부머세대가 다운 사이징을 하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것중에 하나는 자녀들이다. 부머세대 자신들이 부모들에게 의지 했던 비율보다 두배가 넘는 자녀들이 현재 부머세대에 의지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자녀들을 놔두고 다운 사이징을 하려고 하면 독립을 위한 비용이 들게 마련이다. 예전 같으면 독립했을 자녀들이 또하나의 걸림돌이 된것이다. 낮은 은행 모기지도 한몫한다. 모기지 납부에 부담을 느끼지 않게 하기 때문이다.부머세대들이 기꺼이 다운 사이징을 할수 있으려면 부머세대를 유인할수 있는 새로운 동인이 있어야 할것 같다. 공동 주택의 형태가 아니면서 단촐한 노인 세대가 살수 있는 주택형태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이제 단순한 실버 시설로는 부머세대를 유인할수 없다. 경제력을 충분히 갖고 있으면서, 공동시설을 기피하고푼 세대를 유인하려면 정원도 있고, 변려동물과 편하게 지내면서, 가끔 방문하는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불편하지 않은 형태의 주택이 필요한데, 수요가 구체화 되면 곧 또하나의 형태의 주택 개발사업이 근교 또는 아직도 저가의 택지가 가능한 곳에서 시작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권오찬 부동산 중개사
2013-09-11 14:3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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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고지금 (博古知今)
콜롬버스가 1492년에 미대륙을 발견한 후, 미국은 1776년 영국으로 부터 독립선언을 하고 오늘 날까지 500여년이 지났다. 캐나다는 좀더 짧은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러나 짧은 국사(國史) 기간에도 불구하고 두나라의 역사 꾸미기는 휼륭하다고 할 만큼 성실하다. 유물이라고 해 봤자 수십년 혹은 100여년 정도 된 건물 정도가 허다하다. 암석이나 구리 같은 견고한 재료를 주 건축재로 한 중후한 역사적 건물이 많은 것도 아니다. 목재 건축물이 대부분이다. 식민지 건설을 하는데는 값싸고 시공이 간단하고 빠른 목재 만큼 경제적인 재료가 없었다. 역사가 긴 한국이나 중국등에서 온 이민자들이 볼때 자녀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캐나다 역사는 잉크냄새가 가시지도 않은 덜 익은 역사로 보인다. 그러나 역사를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 보통 성실한게 아니다.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역사는 바로 현재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기초이며 어떤국가의 현재의 당위를 설명해주는 최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개인도 자녀들에게 지난날을 말해주곤 하는데 그것은 인류가 지식을 후대에 전해주는데 크게 기여해온 본성이다. 역사도 따지고 보면 후대에 남기는 무언의 잔소리(?)라고도 할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국에서는 한동안 국사를 홀대하고 대입필수에서 빠지고 선택과목으로 홀대 받다가 다시 주류로 편입된다고 한다. 참 특별하게 보인다. 국가가 집단적으로 바보짓을 십수년 해온 꼴이 됬는데 그동안 국사를 재대로 배우지 못한 세대는 누가 책임을 질는지 어이 없는 일이다.옛일을 두루 배우고 깨달으면 현재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지혜가 생기고 현재일을 해석할수 있게 되는 것을 일컬어 박고지금이라고 한다. 과거를 깊이 이해하고 알아 갈수록 현재를 알아가는 지식이 높아진다. 과거를 수량화 하는 통계라는 학문도 따지고 보면 박고지금의 일환이다. 지난 7월 부동산 거래가 수년중 가장 많은 거래량을 보였다. 고무적인 현상이었다. 수년전 미국에서 발발한 금융위기가 시차를 두고 캐나다에 구체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 부동산 시장에 훈풍이 분다고 하니 이것도 시차를 두고 캐나다에도 불어올 것이라고 예상해 보는 것이 무리는 아니라도 생각된다. 현재는 모기지 대출조건을 어렵게 적용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의 활성을 가장 크게 제어 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인위적인 방법을 강하게 쓴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부동산 시장이 위축을 지속해야 하는 자연적 조건이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다고 해석할수 있다. 금융권이 언제 까지 모기지라는 먹거리를 포기하고만 있을수 있을까? 서브프라임 모기지 론으로 망가졌지만 모기지 론이라는 먹거리는 돈 장사를 하는 은행이나 금융회사에겐 한없이 포기하고만 있을수 없는 너무 중요한 먹거리다. 문제를 일으킨 주체들이라고 해도 금융시장도 고사하면 안되는 중요한 경제영역이다. 그런 면들을 곰곰히 생각하고 수년전을 돌아 보면 지금(知今)은 아주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권오찬 부동산 중개사
2013-09-06 17:3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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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디어
이번호에는 앨버타주의 핵심도시들인 캘거리와 에드몬튼의 중간지점에 위치하여 인구에 있어서도 캘거리및 에드몬튼 다음으로 세번째로 많은 곳인 레드 디어에 대해 알아 보기로 하겠습니다. 오일과 곡물류, 목축이 주산업으로 이루어진 Aspen Parkland에 위치하여 오일과 농업센터이며 석유화학제품 생산의 중심지 이기도 합니다. 2013년 시 인구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레드 디어의 인구는 97,109명이며 주변지역까지 합치면 15만 2천명을 넘습니다.유럽인들에 의한 정착이 이루어 지기 이전 Blackfoot, Creek, Stoney와 같은 원주민이 거주 하였고 18세기 후반부터 유럽 모피상들이 다니기 시작하여 1891년경 켈거리와 에드몬튼을 관통하는 기차가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1901년만 하더라도 343명에 불과하던 이곳이 1930년대에 비옥한 토지를 기반으로 수익성 좋은 다양한 농업활동이 이루어 지게 됨에 따라 인구가 대폭 유입되기 시작하여 수천명으로 늘어 납니다. 이 당시는 주로 농업서비스와 배분센터로서의 역활을 하는 도시로 성장하였습니다. 1930년대의 대공항 당시 도시가 다소 침체하였으나 제 2차 세계대전 발발후 대규모 군사기지로 선정됨에 따라 다시 활발해졌고 1948년 노스 레드 디어시와 합병하여 1950년대 부터 급속도로 성장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현재는 이곳이 오일과 가스 추출및 관련산의 주요 기지이면서 앨버타주의 주정부 건물과 법원 행정 사무실의 중심부이기도 합니다. 주로 백인 케네디언이 89%정도이며, 원주민과 중국인이 각각 1.1%정도로 천명내외 그리고 한국인은 약 70명 내외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됩니다.세개의 주요 교육기관이 있고 레드디어 공립학교구는 1887년 설립되어 현재 1만여명의 학생을 관리하며 레드 디어 칼리지가 있어 지역사회 성인교육을 담당하고 있습니다.약 35개 이상의 중대형모텔과 각종 비지니스 사업체가 성업중인 이곳은 가구수가 수십년간 인구의 증가율을 추월해 왔습니다. 일례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인구가 6.8%늘은 반면 가구수는 9.2%가 늘었고 2001년부터 2006년까지의 인구증가가 22%로 현격히 늘자 가구수는 25.6%로 증가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구 증가만이 주택수요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인 즉 줄어드는 결혼율, 부보 단독거주 세대수의 증가등이 이러한 가구수의 증가에 기여하는 추가적인 요소들입니다. 1986년 3.1명이던 가구 구성원수가 2006년에는 2.5명으로 줄어들었으며 레드 디어의 주택건축수를 보면 1996년에서 2000년까지 2,910채가 지어진 반면, 2001년에서 2006년사이에는 6,745채가 지어졌습니다.
서준영
2013-08-30 13:4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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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브리지
이번호 부터는 풍부한 자원관련산업등을 기반으로 타주에 비교적 여유가 있고 세제혜택등이 좋아 우리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며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알버타의 주요도시를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우선 앨버타 남부의 산업경제와 부동산 사업의 중심지인 레스 브리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캘거리, 에드몬튼 그리고 레드 디어 다음으로, 2013년 인구통계조사에 의하면 약 90,400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고 그 지역의 규모에 있어서는 켈거리, 에드몬튼 다음으로 세번째 크기입니다.부근 로키산맥의 영향으로 여름에도 시원하며 겨울에는 온난한 곳으로 상업, 금융, 운송, 산업의 중심부 역활을 하는 이곳은 19세기 후반 석탄 채굴업으로 부터 20세기 초반에는 농업이 근간을 이루다가 요즈음은 건강, 교육, 소매, 관광서비스등이 주류를 이루고 주 고용주는 정부관련 기관들입니다. 캘거리 남부에 유일한 대학이 이곳에 있고 알버타 남부 세개중 두개의 캠퍼스가 이 도시에 있습니다.19세기 이전에는 다수의 원주민이 거주하였던 이곳은 도시가 올드맨리버(Oldman River)에 의해 분리됩니다. 강둑을 따라 위치한 4000 에이커의 도시공원체제는 북아메리카에서도 가장큰 규모중의 하나 입니다. 이곳은 북부, 남부, 서부등의 세곳으로 나뉘는데 강이 동서를 가르고 크라우즈 네스트 하이웨이와 캐나다 태평양 철도가 남북을 가릅니다. 최근에 생긴 도시는 웨스트 레스브리지로서 약 34,000명의 인구에 최근의 성장이 주로 이루어진 지역입니다. 25,000여명이 거주하는 북쪽은 현지 광산 근로자가 주로 거주하였던 곳으로 타운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며 다수의 산업공원이 있습니다. 약 4만명이 거주하는 남부 지역은 도시의 상업 중심지로서 다운타운 중심부이며 소매, 관광사업관련 업체들과 칼리지가 위치합니다. 2011년 연방통계에 의하면 전체 37,000여채중 34,140채에 주민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대부분 90%정도가 백인으로 되어 있었으나 최근 비유럽계인구가 늘어 나고 있는 추세이며 일본인 1,200명, 중국인 920명에 비해 한국인은 120여명이 거주하며 주로 관광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주위 교역지역의 인구를 포함시 약 275,000명이 계산될수 있고 BC주와 몬타나주일부를 포함합니다. 이곳의 주요 사업계획인 Economic Development Lethbridge는 캐나다 국영화물업체와 Taco Time본사가 있던 이도시에 자본투자와 일자리창출에 기여한 곳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서준영
2013-08-16 11:3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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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우드
스파우드는 BC주 엘크강 주위에 있는 도시로서 페르니(Fernie)로부터 약 30 킬로 지점에 떨어져 있고
4,200여명의 인구가 177 평방 킬로에 퍼져 살고 있어 인구대비 비교적 매우 넓은지역에 속하며 석탄광산지역을 포함합니다.
로키산맥에서 서쪽으로 제일먼저 목재매매를 시작했던 사업가인 스파키 스파슨(Sparky Sparson)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이곳은
원래 스파스 웃턴으로 불리다가 1870년대 이후 줄여서 스파우드로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이곳 경제는 BC주의 주요산업중의 하나인 석탄광산업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다수의 인구가 광산에서 일하거나 관련산업분야인 트럭이나 관련기술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임업또한 중요산업으로 손꼽힙니다.스파우드. 엘크밸리 공항이 현지 공항입니다. 이 도시는 1966년 시로서 제정되어 주요도시인 미첼, 네이털, 미들타운등의 인구를
유입하였습니다. 초기부터 광산업의 발전과 쇠퇴를 경험하여 왔으며 한때 세계에서 가장 큰 트럭인 테렉스 타이탄트럭은 이곳의
자랑거리로 크라우즈 네스트 고속도로변에서 볼수가 있으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끕니다. 이곳 거주민의 대부분은 석탄산업관련
종사자로 블루칼러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교 시스템은 두개의 공립학교가 크랜부룩에 본부를 둔 제 5 남동 쿠투니 교육청 산하에
관리됩니다.1979년 2월에 처음도입된 공식 커뮤니티 플랜은 1981년에 수정되어 1982년 확정 되었고 최근 2002년에
들어 수정된 플랜은 휴양 거주지 지정과 주로 관련이 있습니다. 이 지역의 향후 인구증가 대비 주택건설계획을 살펴보면,
2025년까지 엘크포드(Elkford), 스파우드(Sparwood)지역에 각각 9-10개와 27개의 유닛이 필요하게 되는데 이는 약
7.9%의 수요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입니다. 향후 주택개발을 추진하게될 지역은 위스키 잭(Whisky Jack) 골프코스,
체리우드, 화이트 우드, 사이프러스 드라이브 등지이며 주택 가격은 대략 30-40만 혹은 그이상의 가격대를 예상합니다.이 곳의 경제개발과 관련하여 중요한 두개의 프로젝트는 둘다 석탄광산과 관련이 있는데 모두 엘크포드와 스파우드지역에 수요를 늘릴것으로
기대됩니다. 첫째는 텍(Teck)사에 의한 석탄개발활동이 더 활발하게 진행되어 2012년 2천4백만톤에서 2013년 2천6백만톤
그리고 2015년에 3천만톤을 채굴한다는 계획으로 텍(Teck)사에서 채용인원이 늘어 남을 뜻합니다. 두 번째 광산활동은
빙게이(Bingay)광산으로 현재 테크(Teck)사에서 사용되는 4일제 근무/휴무에서 5일 근무제로의 전환입니다. 이로써 두지역에
보다 장기적이고 영구적인 거주가가 늘어나게 되고 실거주민의 증가로 인한 주택수요창출을 뜻합니다. 스파우드의 현재 미개발택지는
74.4%가 개인및 회사의 소유이고 2.9%가 주정부 그리고 22.7%가 스파우드소유인것으로 나타납니다.
서준영
2013-08-02 09: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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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트 앨버니
포트 앨버니는 BC주 앨버니-클레이요켓 지역구에 위치한 도시로서 주변인구를 포함해 약 25,000여명이 거주하고 있습니다. 밴쿠버아일랜드의 가장 긴 내만인 알버니 내만의 머리부분에 깊이 들어서 있는 항구도시로서 1790년대에 밴쿠버아일랜드 해안지역인 포트 샌미구엘을 관할했던 스페인 선장, 페레 앨버니의 이름을 따라 명명되었습니다. 이곳은 1930년대와 1960년대에 금의 탐사가 한때 성황을 이루었던곳으로 다수의 금맥이 있으며 시더나무등의 숲이 우거진 관계로 일찍부터 임업이 산업의 근간을 이루어 포트 앨버니, 센트럴 레이크및 맥크린 지역에 제재소가 지어졌었습니다. 한떄 광산업 또한 이곳 경제의 한축을 이루었던 곳으로서 현재는 서부해안 커뮤니티를 위한 지역정부의 서비스 센터이며 주요 병원시설을 갖추고 있고 요즈음 관광종착지로의 재개발과정에 있습니다.1946년에는 그당시 밴쿠버아일랜드를 뒤흔들었던 진도 7.3의 지진이 포트앨버니 북쪽 부근을 진원지로하여 일어 났는데 밴쿠버근교의 지진이 주로 구조경계판에서 일어난데 반해 이때는 지각의 각질부분에서 일어난 것으로 BC주 역사상 가장피해가 컸던 지진중의 하나로 기록됩니다. 1964년에는 해일로 인해 55채의 집이 쓸려가고 모두 375채가 피해를 입기도 하였습니다. 최근 이곳의 거주지역의 개발및 성장은 주로 도시의 서쪽 끝부분에서 이루어져 웨스트포트(westporte) 인근 마을로 형성되었습니다. 이 도시의 작은 만들과 협곡이 자연적으로 이곳을 몇개의 지역으로 나누는 기준이 되었으며 과거 30년간 경기불황으로 인해 인구가 줄었다가 최근 상황이 나아짐에 따라 인구감소세가 멈추었습니다. BC주 평균가구수입이 5만2709달러인데 반해 4만3624달러로 다소 낮은 편이며 중국계와 남아시아계가 각각 120명과 665명이 거주하고 한국인은 집계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따라서 전체인구대비 소수민족은 5.7% 그리고 원주민은 11.8%가 거주하고 있습니다. 제 70앨버니 교육청 산하에 11개학교가 관리되며 2012년과 2013년사이에 수백만불이 투입된 첨단시설의 예술고등학교가 오픈하였습니다. 유클룰렛, 토피노 그리고 환태평양 자연공원지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허브역활을 하여 다수의 소매상가, 그로서리, 스트립몰이 생겨나게 되었고 환경을 기반으로한 여행사가 만들어져 밴쿠버에 가까우면서도 자연에도 접근성이 좋은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습니다. 2007년에 채택된 공식커뮤니티 플랜은 거주,상업및 산업시설의 개발시 사용되며 토지용도 규정이나 개발허가, 자산집행계획 그리고 토지분할통제등 다양한 수단으로 효과적운영이 되도록 하고 있습니다.
서준영
2013-07-26 10: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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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클룰렛
우클룰렛은 밴쿠버 아일랜드 서쪽에 위치한 인구 약 1600여명의 작은 도시입니다. 원주민 말로 “안전한 해변의 사람들”이란 뜻을 의미하는 이곳은 BC주의 주도인 빅토리아로 부터는 북서방향 288 킬로 지점에 위치한 바클리사운드(Barkley Sound)의 북쪽에 위치합니다. 가장 가까운 도시는 100킬로 동쪽에 위치한 포트알버니 이며 이곳에서 북서 방향 40킬로지점에는 4번 하이웨이 선상에 토피노가 있습니다.토피노와 우클룰렛사이에는 환태평양 국립공원 보호구역에 속하는 롱비치가 있고 안쪽으로 거슬러 들어가면 어업및 과학연구단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 100킬로미터 북쪽에는 누카사운드(Nootka Sound)지역이 나타나며 적어도 4300여년 이전에 원주민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세계2차대전 발발당시 밴쿠버 아일랜드 서쪽해안에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침략에 대비해 해상비행장이 만들어 지기도 했으며 토피노에 이르는 도로가 30년에 걸쳐 완성되었습니다. 1959년에는 포트 알버니에 이르는 도로가 만들어 졌으며 1952년에는 도시로 제정되었고 1997년 지역구로 변경되었습니다.우클룰렛 시내에서 28킬로 지점에 원주민 보호구역이 이곳에 매우 중요한 구성요소이며 요즈음 들어 우클룰렛과 토피노는 리조트 단지, 식당, 여행센터등이 집중되는 곳으로 기존의 주요산업이던 어업과 임업이 이제 계절적으로 두 도시를 지나는 여행객들을 대상으로한 관광과 접객산업으로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 이루어 가고 있습니다. 공공교육의 경우, 제 70알버니 교육청에 의해 관리되며 산하에 우클룰렛 초등학교와 세컨더리가 있습니다. 토피노와 마찬가지로 자원을 근간으로 했던 경제가 이제 관광을 토대로한 경제기반으로 탈바꿈하고 있으며 써핑, 낚시, 카약, 캠핑등 다양한 관광활동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2011년말 공청회를 거쳐 공식커뮤니티플랜(OCP)이 채택되었으며 이에 따르면 연간 10채에서 20채의 신규주택건립이 요구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토지 이용계획을 보면, 마을 관광구역(0.5%), 공원구역(8.7%), 거주 구역(18.7%), 상업구역(7.3%), 산업구역(2.1%)등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또한 바닷가에 위치한 위유로 용수구역이 5.5%를 차지하고 복합개발구역이 가장 많은 53.3%로 365헥터에 해당합니다. 주택은 총 640채에 64.8%가 단독 가구이며 13.3%가 5층이하 아파트에 거주합니다. 다수의 거주가구인 약 64%가 소유주택에 살고 있고 평균 세대의 크기는 2.3명입니다. 현재 성장률 1%인 이도시는 2011년 관광산업영향으로 집값이 치솟았지만 향후 10년내지 20년까지의 주택수요를 충당하기에 충분한 거주지정구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서준영
2013-07-12 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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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머랜드
섬머랜드는
오카나간 서쪽에 있는 도시로 2011년
기준 11,000여명이
살고 있습니다. 북쪽으로는
피치랜드 그리고 남으로 펜틱톤이 있으며 이지역의
가장 큰 중심부는 북쪽으로 50킬로
떨어진 캘로나이고 밴쿠버까지는 425킬로
거리입니다. 이전에
Trout Creek으로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노인연령층이 많아 은퇴가구가
상당수를 차지합니다. 다수의
양조장을 연결하는 병목도로가 많고 1906년
도시로 제정되어 2006년
백주년을 기념하였으나 정착의 역사는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 갑니다. 1920년대에
현재의 섬머랜드 타운이 개발되기 시작하였고 원래
펜틱톤 인디언 제3보호구역의
일부 였습니다. 주로
캐나다 동부지역과 영국으로 부터 초기 정착민이
유입되었고 1922년에는
타운 아래지역 건물들이 화재로 파괴되어 현재의
다운타운 지역인 서부 섬머랜드의 중요성이 높아 지게
되었습니다.
톰슨-오카나간
고원지역에 위치하여 캐나다 전체에서 가장 덥고 건조한
지역중의 하나로 겨울에도 단지 몇주간 만이 다소
추울뿐 대부분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습니다.
건조한
날씨탓에 2003년
여름에는 도시의 용수를 위한 저수용량이 턱없이
부족하게 되어 영구 물사용 제한규칙이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
소수민족은 전체의 3.5%인
370여명이
거주하고 이중 한국인은 30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67
오카나간
스카하 교육청산하에 공립학교가 관리되며 두개의
초등학교와 한개의 중학교 그리고 한개의 세컨더리가
있습니다. 사립학교로는
몬테소리 학교 한군데가 있습니다.
오카나간
호수와 모래가 많은 해변에 위치한 전원적 환경으로
유명하며 이로인해 한때 관광이 주산업이 이었고
관광객도 많이 찾았으나 이제는 거주지역의 개발로
관광업이 시들해지고 있습니다.
주로 일반
과수농업이 주를 이루었던 20세기
초반과 달리 현재는 와인산업 성행하여 과수에서 포도의
재배로 중심이동이 되었고 현재 세계적인 양조장들을
갖게 되었습니다.
공식
커뮤니티 플랜(OCP)에
따르면 다운타운 중심부로 부터 800미터(도보
10분거리)반경에
서비스와 거주시설물에 있어 도보중심의 시설물을
장려하고 있습니다. 2005년도에는
농지위원회에 의해 154헥터
즉, 380에이커의
토지가 농지구역에서 해제되어 도시화로의 장기적계획에
보조를 맞추고 있습니다.
2004년부터
2031년까지
30%의
성장을 기획하고 있으며 이는 2010년
이후 연간 0.8%의
성장을 의미합니다.
저밀도,중밀도,고밀도
거주지역으로 나뉘는 주택건설은 각각 헥터당 15-28
유니트,
23-60 유니트
그리고 60 유니트
이상의 주택을 지을 수 있습니다.
서준영
2013-07-05 17:37: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