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며칠 전, 지맥(GMAC)이라는 금융회사의 마케팅담당자를 만날 일이 있었습니다. TD은행의 파트너인 GMAC은 소득을 증명할 수 ‘없는’ 자영업자를 위해 집 값의 90%까지도 대출을 해 줍니다. 그러나 수수료가 만만치 않습니다. 대출비율에 따라 적게는 전체 대출금액의 1%부터 최대 7.3%의 수수료를 요구합니다. 예컨대, 40만달러짜리 집을 사면서 36만달러의 대출을 받으려면 무려 26,280달러의 비용이 들게 됩니다. 그러나 이 비용 또한 대출에 합산되기 때문에 취득세 등 모든 비용을 감안 하더라도 5만달러만 있으면 집을 살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수수료7.3%는 너무 심한거 아니냐?”, 속으로는 ‘너 강도 아니냐?’ 하고 물었더니 이 친구 대답이 “7.3%를 5년으로 나누면 1.5%가 채 안되는거다. 집 값이 오르는 걸 바라만 보면서 비싼 렌트 사는 사람이 자기 집을 갖는 대신 드는 연 1.5%의 비용이 비싸다고 생각하느냐?”고 거꾸로 묻더군요. 허긴 이 회사 입장에서 보면 위험부담이 꽤 큰 겁니다. 만약에 집 값이 10% 이상 떨어지게 되면 즉, 대출잔액 이하로 집 값이 떨어지면 집을 쉽게 포기하는 대출 고객이 늘어 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 위험부담에 대한 보험료라는 것입니다.
불과 십 수년 전, 씨티뱅크를 위기로 몰고 갔던 대사건의 원인도 결국 과도한 대출때문이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에서 “No Doc”(No Document를 줄인 말로 대출서류가 필요 없다는 말)을 외치며 대출에 열을 올렸던 씨티뱅크. 당시는 은행의 주력분야였던 기업금융의 수익이 점점 줄고 남미에서는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던 상황입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씨티뱅크는 수요자금융 쪽으로 일대 사업전환을 시도하였고 자연스럽게 부동산 붐과 맞물려 주택담보대출을 공격적으로 했던 것입니다. 그야말로 최대한 간단히, 최소한의 절차로 마구 대출을 퍼 주었습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부터 집 값이 떨어지면서 대출상환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포기하는고객이 늘어 났고 이에 따라 은행의 부실채권도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천하의 씨티뱅크가 1990년 11월 부도 직전의 위기에까지 몰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40달러대였던 주가는 2달러 밑으로 폭락했고 미국전체 금융산업의 붕괴까지 우려되는 심각한 상황에 미국정부도 충격에 빠졌습니다.
이 때 사우디의 알 왈리드 왕자가 구세주로 등장합니다. 알 왈리드 왕자는한국의 외환위기 때 거물 투자자로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인물입니다. 그는 다 쓰러져 가는 씨티뱅크에 당시 5억9천만달러를 투자했고 이로써 씨티뱅크는 기사회생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는 씨티뱅크의 최대주주로 남아 있습니다. 그 한 번의 투자로 100억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그는 최근 포브스가 선정한 전세계 개인부호 순위에서 237억달러가 넘는 재산으로 5위를 차지한 거부가 되었던 것입니다.
씨티뱅크의 사례는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최악의 경우이지만 적절히 대출을 활용해 재테크로 성공한 사례도 수 없이 많습니다. 집 값이 오르는 상황에서는 물론 최대한 대출을 얻어서라도 집을 구입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대출이자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만 있다면 말입니다. 그러나 집 값이 어떻게 변할지, 대출금리가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정확히 예측할 수 없습니다. 금리가 오르면 집 값이 내린다고 합니다. 그러나 금리상승이 즉시 집 값에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과거의 변동그래프를 보면 금리가 정점에 다다른 후에야 집 값이 꺽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이유는 금리가 올라도 실감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 높은 금리로 대출이 연장 되고 나서야 비로서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현재의 수입에 비해 원리금 상환이 빠듯할 정도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았다가는 금리가 오를 경우, 감당하기가 점점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되면 대출금을 줄이기 위해 집을 줄일 생각을 해 봅니다. 그러나 이미 매물이 많이 쌓여 있다면 기대하는 값을 받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그래서 금리가 올라도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집 값이 꺽인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상환능력에 알맞는대출은 내집마련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고마운 투자수단이겠지만 투기의 수단이 되었다가는 자신을 찌르는 무서운 양면이 있음을 알아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