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을 맞아 한국에 온지 얼마 안된 지난달 초 한 TV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제목은 “자식 교육에 올인한 부모-당신의 인생후반전 준비?”이었다. 자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내면서 자식에게 모든 것을 건 한국의 기러기 아빠가 주제였다. 한국의 한 신문 기사에 따르면 한국에는 네 종류의 아빠가 있다고 한다. 독수리 아빠, 기러기 아빠, 펭귄 아빠, 그리고 국내산 기러기 아빠. 독수리 아빠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언제든지 비행기를 타고 자식이 있는 곳으로 직행할 수 있다. 기러기 아빠는 1년에 한두 번 휴가를 내서 다녀올 수 있고, 펭귄 아빠는 그마저도 할 수 없어 펭귄처럼 좁은 보폭으로 한국에서 자식을 그리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내산 기러기 아빠는 사교육비를 벌기 위해 아내가 늦게까지 부업을 하는 경우의 아빠라고 한다. 이런 기이한 단어들은 우리나라의 무서운 교육열을 실감케 한다. 부부 모두 자식의 교육에만 매달려 점차 가족간의 대화가 끊어지고 심지어 유학생활 실패와 경제적 파산으로 인하여 가정이 파괴된다는 다큐멘터리이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가정에서 자식 유학을 위해 빚을 지면서 정신 없이 일에 매달리는 부모님들을 떠올리니 안타까웠다.
고등학교 때부터 실질적인 봉사활동과 아르바이트로 자신의 경력과 용돈을 마련하는 캐네디언들과 달리 한국사회 부모들의 의무가 되어 버린 사교육이 사회적 문제가 된 것은 이미 오래 전 얘기이다. 자식의 출세와 성공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내동댕이 쳐버린 부모들은 어쩌면 진정한 책임감을 놓아버린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또한 현지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빗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마음 한구석에 동정과 분노가 뒤섞인다.
한국 부모들은 자식 사교육비 때문에 정작 자신들의 노후는 뒷전으로 미루고 있어 향후 맞이하게 될 고령화 사회도 염려된다. 교육이란 보장된 투자도 아니며 전 재산을 털어 하루아침에 ‘대박’을 불러오는 주식 투자는 더더욱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녀 모두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효율적으로 교육을 계획한다면 서로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차근차근 목표를 이뤄가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 아닐까 생각된다.
동양과 서양의 정서적, 문화적 차이점을 놓고 어느 쪽이 옳고 그르다는 것을 단정할 수 없듯이, 오랫동안 이어온 우리나라의 가족 의무도 무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부모가 자식의 대학교육까지 뒷바라지하는 것을 문제화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세상이 변해도 부모와 자식간의 책임감은 상호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같은 유학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내 유학생활은 부모님과 나의 책임이 공존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의지만 있으면 길이 열린다는 옛말이 있듯이, 교육도 효(孝)도 결과적으로는 어느 한쪽의 강요나 금전적인 여유만 갖고 채워지는 항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원경 학생기자 (경영학과 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