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에 이민 오신 분이 대출 상담을 위해 방문하셨습니다. 집을 사면서 모기지 즉, 담보대출이 필요하니 금리가 얼마인지 묻습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대출이 필요 없는 분이었습니다. 갖고 있는 현금만으로도 충분히 주택구입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왜 대출이 필요한지 혹시 사업자금으로 필요한 것은 아닌지 알아 보았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대출이 필요했던 이유가 신용을 쌓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신용을 왜 쌓으려는지 묻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혹시 대출이 필요할 때나 렌트를 구할 때 신용이 좋으면 유리하겠지요. 그렇지만 그럴 일이 없다면 굳이 예금과 대출의 이자를 손해 보면서까지 신용을 쌓을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이 분처럼 현금이 많아서 빚 없이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보통사람에게 평생 은행대출 한번 안 받고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살다 보면 갑자기 돈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마음에 드는 집을 사기 위해 조금 무리해야 할 때도 있고 사업을 하다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만약 은행의 대출고객 모두가 제 날짜에 대출을 척척 갚는다면 아마도 은행은 떼 돈을 벌겁니다. 물론 금리도 더 낮아지겠죠. 대출심사도 필요 없고 채권관리도 필요 없으니 그만큼 비용이 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출을 갚지 못하는 고객은 늘 있게 마련이고 그 예상되는 손실이 금리에 반영됩니다. 결국 대출을 잘 갚는 고객이 대출을 갚지 못하는 고객으로 인한 손실까지 부담하는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은행은 신용조회를 통해 대출여부를 결정하고, 심사를 통해 대출한도를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이 고객입장에서는 불편하겠지만 그러한 모순을 피하려는 은행의 노력이라고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대출심사가 까다로울수록 부실채권은 줄겠지만 대출이 줄어 들어 그만큼 은행의 수입도 줄게 됩니다. 반대로 심사가 느슨하다면 대출은 늘겠지만 떼이는 돈도 그만큼 많아지게 됩니다. 그래서 최적의 심사기준이 요구되는 것이고 이러한 판단의 근거로써 각종 통계와 개인의 신용기록을 참고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대출상품마다의 통계를 보면 집을 담보로 한 대출의 연체율이 가장 낮고 자동차 담보는 그보다 높고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은 가장 높습니다. 그 연체율에 비례해서 금리가 달라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지 않을까요? 같은 담보라도 상업용 건물의 대출금리가 집을 담보로 했을 때보다 더 높습니다. 그 이유는 사업에 대한 위험성도 있고 채권 회수를 위해 담보를 처분해야 할 때 주택보다 더 힘들고 그만큼 손해 볼 수도 있다는 계산 때문입니다.
한편, 캐나다에서는 개인의 신용점수에 따라 연체할 확율이 통계로 나와 있을 정도로 신용관리 시스템이 발달해 있습니다. 이 점이 한국과의 큰 차이입니다. 한국에서 관리되는 신용이란 불량기록에 관한 것이 거의 전부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대출할 때는 주의하라’는 정보만 있지 ‘이런 사람은 신용이 좋으니 걱정 말고 대출하라’는 정보는 없다는 말입니다. 반면 캐나다의 신용기록에는 수 많은 정보와 함께 신용점수가 표시됩니다. 신용점수가 높다는 의미는 연체확율이 낮다는 것이고 그만큼 안심하고 쉽게 대출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무리 신용이 좋아도 평소 거래하던 은행이 아닌 다른 곳에 가서 신용대출을 해 달라고 한다면 이런 저런 서류를 요구할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캐나다 은행은 평소 거래가 없었어도 신용조회만으로 신분증만 있으면 즉시 대출이 가능하니 이 것이 신용관리 시스템의 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토록 중요한 신용을 어떻게 잘 관리해 갈 수 있을까요. 처음 캐나다에 도착해서는 당연히 아무런 신용기록이 없습니다. 맨 먼저 신용카드를 만들면서 비로소 기록이 시작 됩니다. 매월 적은 금액이라도 신용카드를 사용하고 연체 없이 잘 갚아 나가기만 해도 시간이 지나면 좋은 신용기록이 만들어집니다. 만일 신용카드를 만들어 놓고도 전혀 쓰지 않는다면 10년이 지나도 신용기록은 생기지 않습니다. 다음 주에는 어떻게 하면 신용점수를 높일 수 있는지, 최근 빈번해지고 있는 신분도용의 피해를 어떻게 예방할 수 있을지 알아 보겠습니다.